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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로 풀어보는 맥주 발효 이야기

이스트 이름이 맥주???

by 필리젬마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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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aryna panchenko

 

 

 

시판되고 있는 이스트의 학명은 Saccharomyces cerevisiae(사카로마이시스 세리비지애).

gruit 맥주 공부하면서 영미쪽 리서치 페이퍼를 읽다가 거기에 인용된 라틴어 귀절이 유난히 눈에 박혔다.

 

"negocium (…) fermentatæ cervisiæ, quod vulgo grutt nuncupatur"

 

언뜻 보기에도 negocium은 negociate, fermentatae는 fermentate, cervisiae는 이스트 이름인 cerivisiae에서 i만 빠졌다.

호기심 도져서 찾아본 라틴어 cervisiae(체르비지애)는 놀랍게도 beer, 맥주라는 뜻이다.

 

 

 

saccharomyces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σάκχαρον (saccharo) + μύκης (myces)

 

saccharo는 쉽게 연상이 되겠지만 인공 감미료 이름인 사카린이 바로 이 단어에서 왔다.

그리스어에서 saccharo는 sugar, myces는 fungus, 즉 곰팡이를 가리킨다.

딱히 곰팡이라서 곰팡이라기 보다 미생물을 일컬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게 맞겠다.

그 옛날에 미생물의 존재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으니 발효든 부폐든 상관없이 곰팡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걸 표현했으리라 짐작 가능하다.

 

 

 

결국 이스트라는 건 설탕(saccharo)을 먹는 미생물(fungus)인데 맥주(beer) 발효에 관여한다는 걸 이름 속에서 풀어낼 수 있다.

 

 

 

아주 아주 옛날부터 Saccharomyces cerevisiae는 존재해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미있게도 미생물은 인간과 공존하면서 나름 진화를 겪었다.

처음부터 양조나 베이킹에 적합한 미생물로 어느 날 떡하니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런 미생물들은 인류 문명의 산물과도 같은데 알콜 생성에 관여하는 이스트는 자연적인 미생물 세계에서는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가장 손쉽게는 과일을 통해 미생물 발효를 일으키다가 점차 곡물이나 우유 등이 선택되자 이들 음식들을 통해 다양한 미생물이 선택되고 진화되어 발효에 관여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photo by frank luca

 

 

특히 베이킹과 양조에 주로 관여했던 Saccharomyces cerevisiae는 맥아당(malt sugar)을 발효에 활용하는 쪽으로 진화되어 갔는데 맥아당은 야생에서 좀처럼 발견되기 어려운 당 형태라고 한다.

다들 알겠지만 맥주는 맥아당을 이용해서 발효한 음식이다.

 

 

 

사워도우 미생물 관련해서 Fructilactobasillus sanfranciscensis (샌프란시스코 젖산균) 또한 사워도우 내에서만 발견되는, 야생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미생물이지만...

그땐 그렇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배경에 인간 식생활과 더불어 진화되어 온 미생물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photo by alban marte

 

 

결론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스트 진화를 통제해왔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처음엔 자연발생적으로 미생물이 안착을 했겠으나 인간은 이를 통제 시스템 안에 두고 발효시키길 원했다.

요즘 페이퍼를 하나씩 읽으면서 정리 중이긴 하나, 양조와 베이킹이 시작된 이래 어느 쪽도 예외 없이 각자의 목적에 맞는 가장 적합한 발효균을 뽑아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온 흔적이 역력하다.

그 과정에서 양조와 베이킹을 모두 만족시킨, 가장 강력한 발효균으로서 채택된 것이 Saccharomyces cerevisiae라고 할 수 있다.

 

 

 

최근 10년 전 이상부터 현재까지의 트렌드를 보면 옛날 방식을 찾고 다시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많은 듯하다.

19세기까지는 복합 미생물에서 어떻게든 순수한 단일 미생물을 뽑아내는 것이 발효의 목표였다.

결국 단일 미생물인 이스트(Saccharomyces cerivisiae)의 왕성한 발효를 통해 짧은 발효 시간과 대량 생산이라는 혁명을 가져온 것이 맥주와 베이킹 업계였으나...

요즘은 옛날의 복합 미생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이 빵으로 치면 사워도우이고, 맥주로 치면 자연발효 맥주(Lambic)이다.

아무래도 복합 미생물이 가져다 주는 발효 음식은 소화 측면에서 큰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 시음해봐도 자연 발효 맥주는 마시고 난 뒤 숙취도 없고 위장도 굉장히 편하다는 게 술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아이러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개개인의 선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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