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그래험 크래커를 어린이 건강 간식쯤으로 여긴다.
대체로 꿀을 넣어서 만드는데 내가 찾은 레시피는 매우 드물게도 몰라세스를 사용했다.
요즘은 해외직구가 많아서 사이트 들어가면 다양한 몰라세스가 좌르륵 나오지만 그 당시 마트에 가니 긴 병에 할머니 그려진 브랜드 딱 하나.
그렇게 만든 그래험 크래커는 거의 로투스에 가까운 맛... 계속 집어 먹는다.
아직도 그 레시피는 가끔씩 생각나는, 그러나 귀찮아서 만들기 싫은 고대 유물쯤으로 남아 있다.
몰라세스를 이스트빵에 넣은 레시피를 발견했을 때 그래험 크래커에서의 환상을 기대했다.
환상은 지옥으로 끝났다.
이스트빵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몰라세스, 너무 강하고 너무 역겨웠다.
이 재료가 사워도우와 찰떡 궁합임을 알려준 사람은 테레사 그린웨이.
미국 홈베이커인데 ebook을 낸 저자로 책을 세 권이나 썼다.
여러 블로그에서 외국 사워도우 레시피 퍼온 걸 보면 northwest sourdough가 출처인 곳이 꽤 있는데 그곳 주인장이기도 하다.
테레사의 초기 베이킹을 보면 이스트빵 레시피를 차용해서 하드 계열 사워도우보다 식감이 좀 더 부드럽고 편하게 구울 수 있는 레시피를 많이 짰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중 하나가 몰라세스였다.
몰라세스는 당밀 시럽 정도로 번역되며 진한 간장 색깔의 진득한 액체로 달콤한 맛을 억누르는 씁쓸한 뒷맛이 특이하다.
건강에 좋다고 한 숟갈씩 음용하는 음식으로도 제법 유명하다.
그래서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몰라세스는 제빵용이 아니라 모두 건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하는 경향이 있다.
애나대머라는 빵을 들어본 적이 있을텐데 전통적으로 이 빵엔 몰라세스가 들어간다.
옥수수 가루와 몰라세스를 넣고 아내 욕을 하며 남편이 만들었다는 그 빵...
이스트빵 애나대머는 몰라세스의 강한 향, 이스트의 쿰쿰한 향이 짧은 발효 시간 내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 탈선하며 끝난 그런 맛?
몰라세스는 사워도우에 배합했을 때 씁쓸한 맛이 사라지고 없다.
빵에서는 달아 죽을 것 같은 향이 올라오는데 혀에서 느끼는 단맛은 약하다.
그래서 수업 때 빵숙제를 내보면 내 레시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몰라세스를 쓰는 수강생을 종종 보곤 했다.
그 양을 이스트빵에 적용하면 입에도 못 댄다.
나중에 언급할 일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이스트빵에 들어가는 설탕 배합을 사워도우에 그대로 적용하면 달아 죽는다.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사워도우엔 설탕 약간만 들어가도 효과가 크다... 버터도 마찬가지고...
예전에 초코 페이스트를 넣은 사워도우 초코번을 이스트 비가(biga) 버전으로 바꿔보니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맛.
같은 당도를 내려면 이스트빵엔 설탕을 줄줄 부어야 한다.
여튼... 몰라세스는 애나대머빵 배합에서 볼 수 있듯이 옥수수와 잘 어울린다.
호밀과도 찰떡 궁합이라서 호밀빵 초심자들에게 몰라세스 섞은 호밀 사워도우를 대접하면 호밀인 줄 모르고 먹을 정도다.
몰라세스는 버터와도 궁합이 좋아 풍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플랙씨드와 더불어 수업 때마다 제발 좀 써보시라 애원하는 재료가 몰라세스다.
특히 건강~ 건강~ 하면서 억지로 호밀 먹으려 들지 말고 몰라세스 같은 재료를 응용하면 호밀도 맛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논픽션 사워도우 vol.2를 이번에 후원하신 분들은 해당 레시피를 시도해 보시면 기존에 알았던 사워도우 범주보다 조금은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한다.
472ml 944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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