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봐야하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BREAD다.
이 책을 읽은 후 한국에서 필독서라 불리는 책 몇 권을 훑어보곤 그냥 놔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건 자격증 참고서지 책이 아니다.
BREAD는 어렵지 않은 언어로 Hamelman의 작업과 생각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그야말로 책다운 책이다.
"When it's ready, it's ready."
수업 때 저온 발효와 관련된 질문이 들어오면 난 이렇게 답한다.
Hamelman의 표현에 나의 허접한 유머(?)를 덧붙인 말인데 저온발효의 타이밍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원문은 "When it's ready, bake it."다. (준비되면 걍 궈!)
- 냉장고에서 꺼내서 바로 굽나요?
- 냉장고에서 꺼낸 다음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 냉장고에 몇 시간 둬야 하나요?
- 냉장고에 몇 시간 두고 실온에 몇 시간 둬야 하나요?
처음 사워도우 시작했을 땐 나 역시 이런 질문에 묶여있었지만 Hamelman의 말을 빌자면 정답 없는 질문이다.
그냥 구우면 된다. 언제? 준비됐을 때!
준비된 때가 언제인지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면 저온발효 몇 시간, 실온발효 몇 시간, 이런 신경과민적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다.
빵을 자유자재로 굽게 되면 포스팅 할 때 재료 그램수는 꼼꼼하게 챙겨도 유독 발효 시간만큼은 고무줄처럼 적는다.
심지어 발효 몇 시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작업자들 대부분이 발효 시간에 신경쓰지 않는다.
특이할만한 발효 환경에 대한 첨언은 별도 적어둔다 하더라도 말이다.
위 사진은 7월 냉장고에서 12시간 된 사워도우다.
바로 구워야 하는 상태다.
오버될까봐 냉기가 직접 닿지는 않으나 가장 추운 칸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놔뒀다.
이걸 실온화시키면 과발효된다.
반대로 겨울엔 그런 칸에 두고 저온발효시키면 실온에서 족히 2시간 이상은 나둬야 한다.
계절마다 발효시키는 냉장칸을 따로 정할 정도로 발효 속도는 환경을 많이 탄다.
"[...] bread should never go from the retarder directly into the oven, the theory being they have to come to room temperature before baking. I have found this to be untrue."
- from BREAD, 1st edit., p.152
수업 때도 늘 얘기하지만 발효는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상태로 파악하는 것이 맞다.
일정한 상태를 파악하고자 온도 컨트롤을 위해 가정에서 발효기를 사는 것도 답은 아니다.
사워도우가 잘 발효되는 온도는 이스트 반죽에 비해 애매하므로( 23 - 25도, 그야말로 실온) 이걸 맞추기 위해 발효기를 산다는 건 넌센스다.
간혹 발효기 없어서 사워도우가 힘들다는 의견도 들어오는데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 경험이 아주 풍부한 건 아니지만 5년 사워도우 수업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 사워도우 발효를 볼 때 가장 힘들어 하는 부류는 이스트 제빵을 너무 잘하는 선수급들이다.
그러므로 언제가 준비된 상태인지 초보라서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말자.
초보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볼 수 있는 확률도 꽤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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