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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책

그때, 맥주가 있었다

by 필리젬마 2020.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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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워도우빵에 잘 쓰는 재료 중 하나가 맥주다.

주로 밀맥주를 많이 쓰는데 아무래도 빵이 밀이다 보니 보리 맥주보다 밀맥주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기왕 쓰는 거 좀 알고 써보자는 생각에서 이 책을 골랐지만 양조 기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역사책이다.

아직까진 맥주 양조 기술엔 큰 관심이 없다 보니 내 취향대로 역사책 비스무리한 것에 저절로 손이 간다.

 

 

이 책은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장면에 등장한 맥주 이야기를 다뤘다.

설마 싶은 마네킨피스(한 번쯤 사진으로 봤을 법한 오줌싸는 아이 동상) 전설도 맥주와 관계가 있고 파스퇴르 박사의 그 유명한 '파스퇴르 살균'은 어처구니 없게도 우유 살균 목적이 아닌, 독일 맥주를 뛰어 넘으려다 무심코 튀어나온 결과물이라는 등, 곳곳에 기상천외한 얘기들이 즐비하다.

 

 

독일산 다크비어 호밀 사워도우빵

 

 

책을 보면 유럽 수도원은 포도주 뿐만 아니라 맥주 또한 양조 기술 발전의 모태가 된 케이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쟁 나간 군인들도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맥주는 모두 마셔야 했고(지금 기준으론 기호품이나 그 당시엔 거의 생필품) 맥주를 봉급으로 주는 경우도 허다했던 만큼, 서양 역사에서 이놈의 술은 그냥 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산업화 시기와 맞물려 양조장이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돈 버는 사람 따로 있단 생각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고...

양조장에서 막 빚은 신선한 맥주를 받기 위해 앞다퉈 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는 부분을 읽노라면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배웠던 근대화라는 단어가 머리에 착 달라 붙는다.

 

 

아일랜드를 제외한다면 신교와 구교의 경계는 바로 맥주와 포도주의 경계와 거의 같다는 논리도 매우 재밌는 대목이다.

(아일랜드는 구교이나 맥주를 주로 마신다)

프랑스와 독일, 카톨릭과 루터의 신교, 맥주와 포도주의 경계, 정말이지 기막히다.

포도주를 즐기는 프랑스, 이탈리아인들이 스스로를 고급지다 여기며 (우리로 따지자면) 오랑캐나 마시는 술이라고 폄훼했던 맥주였으나 파스퇴르가 어떻게든 독일 맥주를 넘어서려고 미생물 연구까지 한 걸 보면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확실히 포도주는 정찬을 위한 분위기 음료지만, 맥주는 물을 대체할 수 있는 식수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 중간 중간 역사 깊은 양조장에서 로컬 스타일로 제조되는 나라별 맥주 사진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션~한 맥주에 사워도우빵 하나 토스트해서 치즈랑 햄이랑 야곰야곰 먹고 싶은 충동이 일고도 남는 시원한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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