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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책

전쟁 말고 커피 - The Monk of Mokha

by 필리젬마 202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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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책도 음식+역사 구조인데 예멘 커피의 개인적 현대사(?)라고나 할까.

한 청년의 성공 스토리라고 하면 매우 진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커피의 역사, 그 역사를 현재로 끄집어 내려는 20대 청년, 예멘이라는 중동의 가난한 국가, 예멘계 미국인, ISIS, 전쟁, 등등 논픽션으로서 흥미진진한 배경을 깔고 있는 만큼 스케일이 크다.

 

 

예멘계 미국인 목타르 알칸샬리가 커피 산업에 뛰어든 건 나름 인생 막장까지 와서였다.

대학 진학 문턱에서 일이 어그러지기 전만 하더라도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살았던 만큼, 커피로 접근하는 과정도 다분히 사업적이라기 보다 NGO 캐치 프레이즈에 더 가까웠다.

'선수'가 되고 싶은 건지 '심판'을 원하는 건지 한 마디 던진 멘토의 말에 목타르는 당장 지인에게 돈을 빌려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해 교육 과정을 밟는다.

인생 업그레이드가 기다리는 모든 고비마다 돈이 징그럽게 따라 붙었다.

이거 내라, 저거 내라... 

 

 

교육을 받는 도중 그는 알카에다, 후티 반군, 정부군이 뒤얽힌 예멘으로 날아가 커피 샘플을 채취하러 다닌다.

상등급인 예멘 커피를 찾기 위한 목표 하나로 거의 목숨을 내놓은 상황.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가져간 몇 백 개의 샘플 중 열악한 예멘 환경에서 최고급 커피가 3군데 농장에서 나오자 목타르는 주저 앉아 운다.

 

 

그것도 잠시, 큐그레이더 시험에 통과하자마자 그는 예멘으로 날아가 커피를 공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샘플을 채취할 때보다 상황은 더 나빠져서 가공장 옆에까지 사우디의 포탄이 날아오는 전쟁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투자자들은 돈 내놓길 꺼리고, 약속받은 돈을 달라고 농부들은 아우성이고, ...

 

 

곧 미국에서 커피 컨퍼런스가 열린다 하고 그곳에서 예멘 커피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은 목타르는 애가 탄다.

전쟁통에 공항은 막혀버리고 후티 세력과 인민위원회(후티 반대 세력)가 서로 뒤엉켜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상황에서 현지 미국인 동업자와 컨퍼런스에 참가하기까지 믿을 수 없는 활극이 벌어진다.

같은 홍해를 건넜지만 모세보다 극적이고 포복절도를 안겨준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방송국을 필두로 미디어들이 달려들어 플래쉬를 터뜨린 건 정말 당연하지 않나.

 

 

중간 중간 나오는 커피의 역사도 재밌다.

예멘이 에디오피아에서 커피를 들여오고 그걸 네덜란드가 훔쳐 자바섬에 심고 프랑스가 훔쳐 자기 식민지에 이식하고 포르투갈이 또 훔쳐 식민지 브라질에 심고...

'초목전쟁'에서 읽었던 홍차 훔치기와 거의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쓴웃음을 안겼다.

유명하다 할 커피 산지가 모두 자생이 아닌 도둑질로 인해 번성했다는 이 아이러니.

현재와 같은 가루 형태로 커피를 우려낸 최초가 예멘이라는 것도 상당한 흥미로웠다.

 

 

 

커피를 들여오게 된 목타르에 의해 애초에 NGO 캐치 프레이즈 같던 그의 목표도 덩달아 이뤄진다.

카트 나무(일종의 마약)로 뒤덮여 생산성 떨어지는 커피를 대신했던 예멘의 농장에 커피 나무가 푸르게 뒤덮이게 된 장면에서 사회 변화의 시작은 나를 변화시키는 데서 출발한다는 당연한 수순을 깨닫는다.

 

 

원두 커피 넣고 만든 호밀 사워도우빵

 

 

예전 공방 근처에서 스페셜 원두를 파는 카페 덕분에 예멘 모카를 처음 접했었다.

나야 5주짜리 커피 수업 들은 게 전부라서 커피 문외한이지만 예멘 커피는 우리집에서 익숙했던 코스타리카, 에디오피아 커피와는 분명 향이 다르긴 했다.

습식과 건식 가공의 차이가 그런 데서 오는 건지 잘 모르지만 예멘 모카가 그리 귀한 줄 알았다면 좀 더 음미하면서 마실 걸 후회가 된다.

 

 

 

목타르의 인생도 인생이지만 이 스토리를 풀어간 이야기꾼의 능력도 만만치 않다.

같이 빌려 온 향신료 책은 지리책인지 역사 교과서인지 헷갈릴 정도로 지루해서 극명한 대비가 되었다.

작가란 사물을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하지만 그런 작가 만나기가 수월치는 않은 듯하다.

 

 

목타르와 작가가 함께 나온 인터뷰가 있길래 링크를 걸어본다.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www.youtube.com/watch?v=QvUAEe6fk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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