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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책

지중해의 납작빵을 읽자

by 필리젬마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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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거리인 일본식 제빵을 별로 안 좋아해서 식사빵에 관심이 많다.

문제는 게으르다.

그래서 그런 책이 있어도 잘 안 해 먹는다.

실은 사워도우만 하는 것도 버겁다.

 

 

Annisa Helou, 어떻게 읽어야 할 지 아니사 헬루(?), 헬로우(?), 여튼 이 저자의 책, Savory Baking from the Mediterranean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 구성은 아니다.

일단, 사진이 없다!

없다기 보다 있긴 한데 흑백...

기록물 같은 느낌으로 빵 단독 사진 보다 빵 만드는 사람/가게, 노점 등을 촬영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요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으면 오래 못 간다.

 

 

이 책에는 사워도우에 대한 내용이 딱 두 문단 정도 적혀 있다.

기본적으로 사워도우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 두 서너 줄과 남프랑스에서 과일을 이용해 만든다는 사워도우 얘기도 한 줄.

외국책에서 과일 이용한 사워도우 얘긴 이 책에서 처음 봤기에 10년 전에 읽으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이 책 발행연도는 2007년.

 

 

그리스나 터키,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는 병아리콩으로도 발효종을 만든다고 하는데 짐작하겠지만 변질이 쉬워서 굉장히 까다롭다고 적혀 있다.

10년도 전에 영미권 블로그에서 브로콜리로도 발효종을 시도해서 성공했었다는 글을 읽었다.

뭔들 안 될까... 결국 발효만 할 수 있다면 새우젓으로도 발효종을 시도할 마당에...

 

 

중요한 건 발효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발효 원종에서 뽑은 풍미가 빵에 어떤 영향을 줄 지, 팽창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지가 관건 아니겠나.

예상대로 브로콜리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빵 만들 때 쓰지 못했다고 했다.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일부러 삽질하는 실험 정신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진심).

 

 

아니사가 쓴 사워도우라는 단어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그냥 발효종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녀는 사워도우 전문가도 아니고 그쪽으로 깊이 있게 간 사람도 아닌 듯하다.

출판한 다른 책들도 모두 지중해식 음식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빵을 만들 수 있는 여러 스타터 중 하나로서 언급한 말이 하필 사워도우인 것 같다.

맥주를 빚었던 영국에서도 효모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발효종 barm을 빵에 썼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워도우를 대신해서 빵을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을 뿐, 사워도우 자체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이 단어를 Peter Reinhart가 Bread Baker's Apprentice에 쓰면서 꼭 사워도우처럼 뉘앙스를 풍겨 영미권 (홈)베이커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많았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면 지중해는 사워도우가 성행했던 곳은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플랫 브레드를 주로 먹는 그 지역 특성상 사워도우로 그 빵을 만들면 마켓이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드 크러스트 반죽으로 속이 빈 플랫 브레드를 만든다?

빵 식으면 태권도 판자깨기 정도는 각오해야 할 듯.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지역 빵은 이스트 사전반죽(preferment)을 이용했고 풀리쉬, 비가, 올드 도우로 플랫 브레드를 만들었다.

 

 

이 책 중간에 기본 르뱅 레시피가 실려 있는데 많이 색다르다.

미디엄 라이에 꿀 넣고 물 넣고 땡땡한 반죽으로 만들어 실온에 12-24시간.

여기에 물과 중력분, 미디엄 라이 넣고 열심히 반죽, 매끄럽게 만든 후 4시간 발효.

이걸 빵 만들 때 쓰거나 냉장 보관.

사워도우라기 보다 올드 도우에 가까운 과정이다.

 

 

이 책은 피타 브레드, 푸가스를 비롯, 다양한 핏자 레시피, 내가 너무 좋아하는 시금치 삼각 파이 스파나코피타(spanakopita) 등 다양한 플랫 브레드 레시피를 실었다.

책에 사진은 없는 대신 다행히 오리지날 빵 이름은 적혀 있어서 인터넷으로 찾아서 비주얼 확인하고 맘에 들면 책 레시피와 비교해서 뭐가 다른지 살펴보는 정도로 참고하고 있다.

 

 

많이 만들어 보고 싶지만 결정적으로 이 책을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딱 한 가지.

몇 가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식사빵이기 때문에 식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식사라는 게 쉽지가 않다.

커리를 비롯한 그 지역 음식을 싸서 먹거나 찍어 먹는 용도의 빵이 많고, 핏자 레시피도 생경하며, 피타 종류도 제대로 먹을라치면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속재료는 어우러지기 쉽지 않다.

소시지나 베이컨 넣은 빵은 내가 싫고...

요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만들기 힘들다는 것이 이 책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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