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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도우/사워도우 제빵팁

100년 된 스타터는 묵은지 같은 맛일까?

by 필리젬마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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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가 100년 되었다는 소리는 우리나라에선 듣기 어렵지만 외국 사이트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무용담처럼 나오는 레파토리 중 하나다.

 

 

 

마치 30년을 달이는 어느 종갓집 고택의 간장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100년 된 스타터...

어제 바로 완성한 스타터와는 어떻게 다른 맛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년 된 스타터와 어제 완성한 스타터는 맛이 다르다.

100년까지는 아니어도 통상 2-3년 키우다 새로 갈아 엎어버리는 내 스타일로 보자면 바로 완성된 스타터는 2-3년 된 것보다 향이 훨씬 상쾌하다.

더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

 

 

 

계속 먹이주기하며 키우게 되면 미생물 군집은 달라진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온도별 발효 최적화 미생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얘네들의 다양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산균만 하더라도 낮은 온도, 높은 온도, 균 종류에 따라 활성화 온도가 분리되어 있다.

어느 온도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산미가 달라지는 건 입 아프니 그만 얘기하고...

 

 

100년 전 재료가 지금도 있을 리 없다.

근대화 된 재료들이 즐비한 지금, 같은 향일 리 없고 같은 미생물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군집 분포롤 형성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100년 된 스타터는, 100년 간 누군가의 손에서 키워진 것이지 100년 간 한결 같은 맛을 내고 있는 스타터는 아니다.

하다못해 어제 먹이주고 오늘 발효된 스타터는 엊그제 발효시킨 스타터와 달라질 수 있다.

발효 온도와 환경이 다르고 재료가 달라지면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

분양시켜 옆집에 나눠주게 되면 주인이 바뀌면서 먹이주기 습관이 바뀐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스타터 맛이 달라진다.

 

 

스타터 맛이 달라진다는 건 맛이 더 깊어진다는 뜻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먹이주기가 없는 묵은지 발효, 먹이주기가 없는 간장 달이기와 달리, 스타터는 먹이주고 키우면서 밀가루 반죽을 새로 갈아준다.

어제보다 오늘이, 1년 전보다 오늘이, 더 진한 맛의 스타터를 낸다는 건 약간 오버다.

 

 

 

같게만 보이는 밀가루도 해마다 작황이 다르고 특히 유기농은 일반 밀가루보다 손을 덜 대기 때문에 작황에 민감해서 작년 먹이와 올해 먹이가 달라지기 십상.

먹이주기 습관도 사람마다 달라서 신맛이 강한 경우, 신맛이 강하다 못해 쓴 경우, 신맛이 마일드한 경우, 다양하기 그지 없다.

 

 

 

내 스타터를 늘 수업 때 오픈했고 나만의 비기 때문에 꽁꽁 숨겨두는 존재가 아니었던 이유도 간단하다.

분양을 해줘도 그 집 가서 1주일 지나면 그 집 스타터가 된다.

미생물은 적응력 갑인 애들이라 이사간 집에 가서 그 집주인 손맛, 재료맛, 물맛을 보고 나면 철저히 그 집 방식으로 적응해버린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수업 때 와서 내 스타터를 분양 받아가던 분이 있었다, 맛이 달라졌다면서.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챙겨왔던 것 중 하나가 사워도우 스타터였다.

그때는 초보여서 이걸 다시 키울 자신이 없다 보니 여기저기 인터넷 뒤져가며 공부한 짬으로 50% 수분량 스타터로 개조(?)시켜 작은 향신료 통에 담아왔었다.

귀국 후, 미국 스타터가 한국 스타터로 변신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깝게는 용인에서 키웠던 스타터와 지금의 서울 스타터도 맛이 다르니...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해진 결과다.

 

 

밀가루 스타터를 건조시킨 제품 : 미국 아마존 구입

 

 

최근, 회사 테스트 때문에 미국 아마존에서 구입한 현지 건조 스타터를 깨워서 쓸 일이 생겼다.

일부러 밥스레드밀 중력분까지 구입해서 대기타고 있었는데...

3회 먹이주고 완성됐을 때 미국 현지의 그 얼얼한 신맛이 몇 년 만인가 했다.

1주일 키우고 나니 밥스레드밀 중력이 미국산이면 뭐하나... 어느새 한국 스타터가 되어 있는데...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 스타터 맛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 싶다면 스타터를 다시 만들어서 지금 키우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나는 직접 비교해보면서 이걸 맛이 깊어졌다 해야할까 아니면 미생물이 그만큼 잡다(?)해진 걸까 궁금증이 생겼다.

 

 

 

수업 때...

스타터를 죽을 때까지 키워도 되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해드린다.

2-3년마다 갈아줘도 되느냐는 질문에도 Yes라고 답한다.

5년, 10년 된 스타터를 키운다는 얘길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스타터의 곰삭은 장맛(?)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키운 작업자의 부지런함이 대단해서다.

 

 

 

애지중지 키우고 비기가 담겨 있어서 절대 남에게 안 준다고들 하던데...

10여년 전, BREAD의 저자가 한국에 와서 워크샵을 통해 자신의 스타터를 나눠 주었다.

그 대가가 자신의 스타터를 나눠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버몬트 스타터가 아무리 대단한들 한국에 온 이상 한국 스타터가 될 것이라 모를 리 없는 분이다.

심지어 그날 받아간 사람들마다 맛이 달라질 건 너무도 자명한 결과고.

 

 

 

한남동 타르틴 베이커리의 사워도우빵이 시다고들 하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 빵을 먹어본 분들은 한남동 산미는 거기에 비비지도 못할 만큼 현지 빵의 신맛은 상상초월이라고 한다.

그나마 한남동은 미국 타르틴에서 사용하는 똑같은 밀을 공수해와서 그 정도지 만약 곰표나 코끼리를 썼다면 한국인 입맛에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여튼... 스타터에 목을 매도 그만, 안 매도 그만이다.

어파치 달라지게 되어 있다.

다만, 작업자의 습관에 따라 길들이기 나름인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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