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빵 레시피를 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블렌딩이다.
블렌딩도 내맘대로 섞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그 기준을 글루텐에서 찾는다.
통밀, 호밀, 앉은뱅이밀, 금강밀, 검은밀, 그 무엇을 쓰건 간에 베이스로 가져갈 주재료의 글루텐 수준에 따라 결과물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다.
기공 큰 빵 먹고 싶은데 통밀 발효종이나 호밀 발효종 쓰면 곤란한 것처럼, 미쉬 브레드에 강력분을 많이 넣으면 안 되는 것처럼, 빵 단면을 원하는대로 조절하고 싶다면 글루텐을 살려주기 위한 블렌딩, 글루텐 기를 꺾기 위한 블렌딩에 신경써야 한다.
포스팅했던 앉은뱅이밀 사워도우 재료 중 금강밀 백밀이 바닥나서 후다닥 레시피를 짜긴 했는데...
- 앉은뱅이밀 사전반죽(금강 통밀 발효종 10그램 + 앉은뱅이밀 45그램)
- 본반죽에 앉은뱅이밀
- 백설 강력분 쬐끔
- 금강 통밀 약간
1차발효 끝날 무렵 기분이 몹시 쎄~~ 결국 2차발효로도 구제가 안 되었다.
예상되는 문제점은...
1. 발효 온도가 낮은 감이 있다.
글루텐이 약한 재료, 특히 아인콘이나 앉은뱅이밀, 호밀 같은 종류는 볼륨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미세한 기공이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런 기공이 나오려면 발효 온도가 높은 것이 좋지만 아쉽게도 이 빵은 초저녁에 1차발효가 진행되면서 온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빵 단면으로 봤을 때 조밀한 부분의 기공이 너무 작고 그에 반해 큰 구멍들은 열에 놀라 글루텐이 찢어지면서 생긴 것들.
1차발효가 무지 길었는데도 접어주기 할 때 자잘한 기공으로 인한 앉은뱅이밀 나름의 풍성함이 반죽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2. 발효 상태
1차발효가 생각보다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된 발효 상태는 아니다.
온도를 좀 높여주면 좋긴 한데 이렇게 글루텐이 적은 반죽은 온도 잘못 올리다간 글루텐 끊어지면서 또 구멍 숭숭 뚫린 빵이 되기 쉽상이다.
따뜻한 실내 공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송송 열리는 기공을 바라기엔 이미 계절적으로 너무 추워져버린 건 아닐까...
3. 재료 배합 중 백설이 맘에 걸린다.
금강밀 백밀이 없기 때문에 글루텐을 조금 받쳐주라고 백설 강력을 쬐~끔 넣었는데 선을 좀 넘은 감이 있다.
글루텐이 좀 어중간했더라면 좋았을 걸 싶은 생각도...
4. 앉은뱅이 발효종
앉은뱅이밀 발효종은 원래 힘이 없다.
발효 상태가 나쁘진 않았는데 이 발효종의 힘을 백설이 억지로 끌어올리다 사고가 났나...?
원래 이 레시피는 이번 책에 실린 아인콘 사워도우를 재료만 바꾼 버전이다.
앉은뱅이밀을 본반죽에, 발효종은 금강밀로 바꿔 티스토리 레시피에 올렸던 건데...
둘 다 힘없는 밀이지만 아인콘이 기공이나 식감면에서 더 가볍게 나온다.
아인콘 '중력분'이라 판매하는 만큼 박력분에 적합한 앉은뱅이밀과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단면 전체에 퍼진 기공간 차이가 너무 크다.
조밀한 곳은 너무 조밀하고 구멍이 뚫린 곳은 너무 크다.
글루텐이 뻗어나가면서 형성된 기공이 아니라 열에 놀라 뻥 뚫린 듯하다.
기공이 저렇게 형성되면 블렌딩 밸런스가 나쁘거나 발효 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다.
조밀한 크럼 부분은 퍽퍽한 식감을 준다.
구멍은 어차피 씹을 것이 없으므로 그 어떤 빵을 만들더라도 단면 전체에 크고 작은 기공이 불규칙하게 덮여 있어야 식감이 좋아진다.
좋은 기공을 얻고 싶다면 큰 기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호밀을 흰 사워도우빵처럼 나오게 하면 식감이 나빠진다.
통밀빵 만들면서 흰 사워도우빵 기공을 원한다면 실패빵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카스텔라나 제누아즈를 만들 때 왜 밀가루를 체에 쳐야할까?
왜 제누아즈가 떡지면 식감이 나쁠까?
사워도우빵 단면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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